자기주도 학습자료

오늘의 사건과 자료

조선물산장려회(평양) 발기 (1920. 07. 30)

7월 30일, 오늘은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민족자본을 육성하고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한 물산장려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조만식 등 70여명이 평양에서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한 지 101년이 되는 날입니다.
『동아일보』 국산품 애용 포스터(1930.11.20.)
『동아일보』 국산품 애용 포스터(1930.11.20.)
#경성방직주식회사 #물산장려운동 #우리가만든것,우리가쓰자 #조만식 #조선물상장려회 #태극셩광목 #태극성상표

자료설명

 본 [자료]는 1930년 11월 20일자 『동아일보』에 경성방직주식회사가 실은 태극셩 광목 광고이다. 1920년대 우리 힘 배양을 주장하며 일어났던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했던 한국인 자본과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광고 윗 부분의 ‘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는 글귀는 1920년대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벌였던 범국민적 민족경제자립 실천운동인 물산장려운동의 대표적인 표어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광목‘,’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로 팔거나 살 때 이왕이면 조선사람 조선광목‘도 같은 맥락의 글귀로 눈에 띤다. 이렇듯 우리 자본이 만든 제품임을 강조하는 광고를 실은 경성방직주식회사는 인촌 김성수(1891~1955, 친일인명사전 등재자)가 설립한 민족기업으로 대표제품이 바로 ’태극셩‘ 광목이었다. 광고 중앙 왼편의 태극과 우리나라 8도를 의미하는 8개의 별이 합쳐진 표식은 바로 경성방직회사가 개발하여 일본으로부터 등록 허가를 받은 ’태극셩‘ 광목의 상표이다. 당시 상표 등록 허가는 조선총독부가 아닌 일본 정부의 업무였고, 본토의 관리들이 태극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등록이 가능했다.

 ‘태극셩’ 상표는 1926년 2월부터 사용했는데, ‘태극셩’ 광목을 소비자들에게 ‘우리 것’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광목은 한 필(1870cm) 단위로 푸른 물감으로 상표를 찍어 파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자(30.3cm)로 사가는 소비자가 있을 경우 상표가 찍힌 자투리 천이 남곤 했다. 포목점 주변 상인들은 자투리 천을 얻어 햇빛과 비바람을 막는 천으로 만들어 장터 천막에 걸었다. 바람이 불면 ‘태극셩’ 상표가 연결된 천 조각이 흔들리면서 태극기 물결을 만들어냈고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기억하는 일본 경찰들을 이를 보며 곤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참고로 광고에 ‘무엇보다 값이 적고 물건 좋은 조선광목’이라면서 묶여 쓰여 있는 농구(農具), 불노초(不老草), 산삼(山蔘), 삼신산(三神山) 등도 경성방직회사에서 생산한 광목이다.

 민족자본 육성과 경제적 자립을 목적으로 한 “조선물산장려회”는 1920년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조직한 것을 시초로 하여 1923년에는 서울에서도 조직되었다. 지역과 계층을 망라하여 자급자족, 국산품애용, 소비절약, 금주, 금연 운동을 펼치며 국채보상운동 이후 두 번째로 일어난 범민족적 경제 살리기 운동을 이끌었다.
참고문헌 경방주식회사, 『경방 90년사』, ㈜경방, 2009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사전6: 운동단체편(Ⅳ), 독립기념관, 2004
한영우, 『미래를 여는 우리 근현대사』, 경세원, 2016

탐구활동

포스터에 등장한 태극셩 광목의 실제 모습을 확인해보세요.

닫기

조선물산장려회의 설립취지 내용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세요.

닫기
조선물산장려회 취지서

우리에게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의지해 살 것이 없으면 우리 생활은 파괴될 것이다. 우리가 무슨 권리와 자유, 행복을 기대할 수 있으며 또 사람다운 발전을 희망할 수 있겠는가. 우리 생활의 제1조건은 곧 의식주의 문제이며 이는 산업의 기초다. 산업의 기초가 파괴되어 우리에게 남은 것이 없으면, 우리가 사람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람다운 발전을 하지 못할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긴급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의식주의 문제, 즉 산업 문제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조선 사람은 이 문제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여러 가지 통계를 굳이 들지 않아도 우리가 입은 옷,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중 어느 것이 우리 손으로 지은 것이며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인가. 그 전부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우리가 우리 몸뚱이를 팔아서 사놓은 것이 아니며, 사다 쓰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쓰는 모든 물건을 집과 땅과 몸뚱이까지 팔아서 타인으로부터 공급받으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우리 강산에 몸을 붙이고 집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산업의 기초가 파괴되면 그 생활, 생명, 인격이 따라서 파괴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조선 사람의 경제적 상태는 곧 우리 모든 조선 사람을 몰아 멸망의 구렁텅이로 넣는 것이라 하겠다.
혹 부유한 자는 ‘나는 돈 있는 사람이며 땅 있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 땅과 돈이 점점 없어지고 그 반대로 빚과 빈곤이 늘어남을 어찌 하겠는가. 또 혹 가난한 자는 ‘나는 원래 돈과 땅이 없으며 조선 사람이 망하고 다른 사람이 부유하건, 다른 사람이 망하고 조선 사람이 부유하건 우리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지만, 조선 사람이기에 직업을 잃고 경지를 빼앗고 생명을 유지할 것 없이 도로에서 방황하게 되는 슬픈 운명을 어찌하겠는가.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모두, 우리가 우리의 손에 산업의 권리, 생활의 제1조건을 장악하지 않으면 우리는 도저히 우리의 생명, 인격, 사회의 발전을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견지에서 우리 조선 사람의 물산을 장려하기 위해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 지은 것을 사 쓰도록 하고, 조선 사람은 단결하여 그 쓰는 물건을 스스로 제작하여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같은 각오와 노력이 없이 어찌 조선 사람이 그 생활을 유지하고 그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제1기의 실행 조건
의복은 우선 남자는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를 음력 계해년(1924) 1월 1일부터 조선인 생산품 또는 가공품을 염색하여 착용할 것.
음식물에 대해서는 소금?설탕?과일?청량음료 등을 제외하고는 전부 조선인 생산물을 사용할 것.
일용품은 조선인 제품으로 대용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사용할 것.

입회조건
본인은 귀회에 입회하고자 하오니 귀회가 결의한 실행요목을 준수하기로 맹세하고 ( )씨의 추천으로 이에 청원오니 가입을 허락해주기를 소망함
대정 년 월 일
주소
성, 이름
조선물산장려회 귀중

물산장려운동에 대한 또다른 광고(동아일보, 1929.12.14.)도 살펴보세요.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