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기쁨을 누리기까지 먼 타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서거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8월 15일을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인물들의 마지막 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을 살펴보고자 한다.
총 3장으로 이동녕과 송병조의 장례식 그리고 차리석의 발인식 사진이다.
일흔이 넘도록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동녕(1869~1940)은 1940년 지병인 천식이 악화, 급성폐렴으로 발전되어 중국에서 순국했다. 이동녕은 교육가로서 독립운동의 발판이 될 인재들을 기르고, 논설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으며, 임시정부 수립부터 광복군 창설까지 묵묵히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마지막 가는 순간에도 독립을 위한 대동단결을 강조했다.
송병조(1877~1942)는 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회계검사원장을 지내다 1942년 병사했다. 임시정부는 송병조가 사망하자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유해를 충칭 허상산(和尙山) 한인묘지에 안장했다.
차리석(1881~1945)이 임시정부에서 맡은 직책은 비서장과 국무위원 정도이다. 임시정부 수립에서 해방까지 27년간 임정을 떠나지 않고 살림을 도맡았기 때문에 동료들은 그를 ‘임시정부의 파수꾼’이라고 불렀다. 차리석의 경우 한국 광복은 볼 수 있었으나 1945년 9월 9일, 임시정부의 환국을 준비하던 중 충칭에서 서거했다.
이동녕과 차리석의 유해가 국내로 봉안된 장소와 시기를 자료로 확인해봅시다.
자세히 보기이동녕과 차리석의 유해가 국내로 봉안된 장소와 시기를 자료로 확인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