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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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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 사회5-2

전시물설명Explanation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이 독립국임을 국내외에 밝힌 선언서다. 최남선이 기초하였으며, 선언서 본문과 독립운동의 실천적 방약을 담은 공약3장, 선언날짜와 33인의 서명이 포함되어 있다.
 
 사진의 3·1독립선언서은 보성사에서 인쇄한 보성사판으로 이 외에도 신문관판이 존재한다. 두 가지 판본이 생기게 된 이유는 최남선이 경영하던 신문관에서 선언서를 조판하고 보성사에 보내 인쇄하였는데, 조판의 짜임이 좋지 않아 보성사에서 다시 조판하였기 때문이다. 보성사판 3·1독립선언서는 첫 문장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에서, 국호 ‘조선(朝鮮)’이 ‘선조(鮮朝)’로 글자가 바뀌어 있어 신문관판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보성사판 3·1독립선언서의 제목은 『선언서』로 되어 있으며, 1919년 2월 10일 경 선언서의 초안이 완성되어 2월 15일 최린에게 전달되고 보성사 사장 이종일에게 맡겨졌다. 보성사판은 2월 27일 2만 1천 장이 인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선언서는 첫 구절부터 공약3장에 이르기까지 논리가 정연한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이 독립국이며, 한국인이 자주 국민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하였다. 첫 구절인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부분은 3·1독립선언서 작성의 목적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둘째, 제국주의와 강권주의를 거부하고, 민족적 평등이 지켜져야 함을 주장하였다. 오랜 역사 가운데 처음으로 다른 나라의 압제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지만 우리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병합’은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았다.
 
 셋째, 한국의 독립은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한국의 독립은 한국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것이며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자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공약3장은 비폭력을 전제로 하면서 결연한 투쟁을 호소함으로써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전개되는데 행동강령이나 지침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라는 표현은 이후 발표되는 많은 독립선언서에 자주 인용되는 구절로 만세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주도자들이 군중을 독려할 때 구호로써 이용되었다.
 
 이렇듯 3·1독립선언서는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와 독립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3·1운동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기능을 수행했다.

#3·1독립선언서(신문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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