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전 학습자료

교과서속 전시물 탐구하기

의거 전 윤봉길 사진

의거 전 윤봉길 사진

전시물 위치Location

* 돋보기 모양을 클릭하시면 이미지를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록교과서Text Book

  • 중학교 역사2(천재교과서)

전시물설명Explanation

 한인애국단원인 윤봉길(1908~1932)이 상하이 홍커우공원 의거 이틀 전인 1932년 4월 27일에 촬영한 사진이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양 손에 권총과 수류탄을 들고 가슴에는 자필로 작성한 선서문을 붙인 상태에서 찍었다. 자필 선서문은 사진 찍기 전날인 26일에 작성한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서문
나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할 것을 진실로 맹세합니다.
대한민국 14년(1932)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윤봉길은 1926년부터 농촌계몽운동가로서 활동하다 중국으로 망명한 인물이다. 그는 1931년 6월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 독립운동 의지를 밝혔다. 이후 1931년 김구 주도로 만들어진 임시정부 특무조직인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1932년 1월 상하이를 침공한 일본이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을 기해 승리를 자축하는 행사를 홍커우공원에서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한 김구는 일제침략자를 처단할 좋은 기회라 판단, 의거를 계획하였고 윤봉길이 의거를 수행하게 되었다.
 
 1932년 4월 26일, 윤봉길은 한인애국단 본부로 이용하던 패륵호 신천상리 20호 안공근의 집에서 자필로 선서문을 작성하고, 의열투쟁을 수행할 것임을 선서하였다. 다음날 27일에는 독사진, 선서문을 가슴에 단 상태로 양손에 폭탄과 권총을 들고 찍은 사진, 한인애국단장 김구와 함께 한 사진까지 총 3장을 촬영하였다. 28일 오후에는 처단대상인 상하이 파견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라와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의 사진 그리고 행사장 입장을 위한 일장기를 구입한 후 홍커우공원을 답사하였다. 저녁 무렵 간단한 자필약서와 김구를 기리는 시, 청년에게 남기는 유시, 두 아들에게 남기는 유시를 적어 한인애국단장인 김구에게 전달하였다.

 4월 29일 의거날 아침, 윤봉길은 김구로부터 도시락폭탄과 물통형폭탄을 받아들고 식장으로 향하였다. 행사는 9시부터 진행되었는데, 윤봉길은 11시 40~50분경 행사가 끝나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 제창 할 때를 적기라 판단하고 물통형폭탄의 안전핀을 뽑아 단상에 투척하였다.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다가 사망하는 등 일제침략자 상당수가 처단되었다.

 윤봉길은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상하이 파견 일본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오사카로 호송되었으며, 12월 19일 일본육군 제9사단 사령부가 있는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을 당해 24살에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윤봉길의거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독립의지를 알렸으며 침체된 독립운동계에 활기를 불러 넣었다. 또한 만주, 상하이를 잇달아 침략당한 중국이 한국과의 공동항일투쟁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이력서및유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