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1902-1920)의 수형기록카드이다. 아래의 수형기록카드를 보면 앞면에는 이름, 연령, 신장 등의 정보가, 뒷면에는 수형사항(출옥년월일, 집행감옥, 죄명 등)이 적혀있다.
<앞>
성명 |
연령 |
광무 6
명치 35 |
년 (1902) 12월 11일생 |
지문번호 |
유관순(柳寬順) |
신장 |
*5척 촌 분 |
87767 |
|
특징 |
|
78768 |
사진 |
<뒤>
수형
사항 |
출옥년원일
및 기타사항 |
**대정10년(1921)
1월 3일 만기 |
비
고 |
거주지
천안군 동면
용두리 418 종형
유경석 ***방(方) |
집행감옥 |
서대문감옥 |
언도재판소 |
경성복심법원 |
형의시기 |
대정8년(1919)
7월 4일 |
언도년원일 |
대정8년(1919)
7월 4일 |
형명 / 형기 |
징역 / 3년 |
전
과 |
초범 |
죄명 |
보안법위반 요소 |
신분 |
평민 |
직업 |
****정동여자고등보통학교 생도 |
주소 |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 |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 |
본적 |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 |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계몽운동가인 유중권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유관순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일본이 서울의 전 학교에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과정에서 유관순의 부모는 일본에 의해 목숨을 빼앗겼으며, 유관순도 일본 경찰에 붙잡혀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노순경, 어윤희 등과 함께 서대문감옥 8호실에 갇혀있다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만세운동을 선도해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몸이 상한 유관순은 형을 다 마치기도 전인 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순국하였다.
*1척(尺): 약 30.3cm으로 5척은 약151.5cm정도임.
**1920년 특별사면령에 의해 형기가 반으로 줄음.
***방(方): 일정한 격식에 글에서 세대주나 집주인의 이름 두에 쓰여
어떤 사람이 그 집에 거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
****정동여자고등보통학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이화학당)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