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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선언을 주도한 재일 한인유학생 사진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재일 한인유학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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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설명Explanation

 1919년 2·8독립선언을 주도한 도쿄 한인유학생들의 출감기념사진으로, 1920년 4월경에 찍은 사진이다.
 
 
 뒷줄 최원순·○·최승만·장영규
 가운데줄 최팔용·윤창석·김철수·백관수·서춘·김도연·송계백
 앞줄 ○·변희용·강종섭·이봉수·○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는 한인유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먼저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이어 독립을 이룰 때까지 일본에 대항해 영원히 혈전을 벌이겠다는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오후 3시 50분, 선언식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임을 감시하던 사복경찰의 연락을 받은 일본 경관대에게 끌려갔다. 이 사건이 바로 도쿄 한인유학생들이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며 일으킨 2·8독립선언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대표 11명 중 이광수는 2·8독립선언을 외국에 알리는 임무를 맡아 중국으로 떠났고 최근우는 불기소로 풀려났다. 이들을 제외한 9명은 9개월과 7개월 15일의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도쿄감옥에 투옥된 9명 중 송계백은 복역 중 병으로 형 집행 정지가 되어 1919년 12월 25일부터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7개월 15일 형의 김상옥과 이종근은 2월 9일에 풀려났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1920년 3월 26일, 만기로 출감하였다.
 
 사진 속에는 체포·기소되지 않은 이광수와 최근우 그리고 2월 9일에 풀려난 김상옥과 이종근을 제외한 서명 대표 7명이 가운데 줄에 나란히 서 있다. 맨 앞, 뒷줄의 사람들은 독립선언 준비를 돕고 대표자들이 체포된 뒤에도 운동을 계속 진행하고자 한 학생들이다.
 
 도쿄 한인유학생들은 식민지가 된 나라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과 자신의 역할을 고민했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유학생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대표적인 것이 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로 일본 경찰에서는 조선인 단체 중 가장 위험한 모임이라 생각해 철저히 감시했다. 이러한 감시 속에서도 한인유학생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어 파리강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국 독립의 기회를 판단했고, “민족을 .제할 자는 도쿄에 유학하는 우리 청년들”이라 확신해 2·8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2·8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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