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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위원부 위원장 임명장

구미위원부 위원장 임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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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 한국사(비상교육)

전시물설명Explanation

 1921년 4월 1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 이승만이 서재필을 구미주차한국위원부(이하 구미위원부) 위원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에 임명장이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서재필(1864~1951)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개업의로 활동하다가 필라델피아에서 인쇄 및 문방구점을 운영하며 상당한 자산을 일궜다.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서의 외교·언론활동에 참여했다.
 
 서재필은 자기 성명의 글자인 Phil(필) Jai(재)sohn(서)을 활용해 Philip Jaisohn이란 영문이름을 만들어 사용했고, 임명장에서도 영문명을 확인할 수 있다.
 
 구미위원부는 1919년 8월 25일 한성정부의 집정관 총재로 추대된 이승만이 미국 워싱턴에 설립한 기구이다. 같은 해 9월 이승만이 통합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공식적으로 임시정부의 공식기관이 되었다. 하와이를 포함한 북미 지역과 멕시코, 쿠바 등지에 ‘지방위원회’를 설치하였으며 서재필이 이끄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국통신부’와 김규식이 맡은 프랑스의 ‘파리위원부’도 구미위원부 산하로 두면서 영향력을 확장하였다. 초대 위원장은 김규식으로, 이후 현순, 서재필 등이 차례로 역임했다. 구미위원회의 주요 활동은 미주 한인들로부터의 독립운 동자금 모금과 미국 내 외교·선전 활동이었다.
 
 1925년 3월 임시정부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탄핵절차를 밟는 동시에 구미위원부 폐지령을 공표하였다. 이에 이승만은 한성정부의 법통을 내세워 구미위원부를 존속시켰다. 1941년 4월 하와이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를 계기로 이승만이 대미외교의 전권을 인정받게 되면서 구미위원부는 임시정부 외무부 산하의 ‘주미외교위원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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