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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자유대회 시가행진 사진

한인자유대회 시가행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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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설명Explanation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 미국 필라델피아 리틀극장에서 개최한 한인자유대회(제1차 한인회의)가 끝난 후 참석자들이 미국 독립기념관까지 시가행진을 하는 사진이다.
 
 미주 한인들은 조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한국 독립을 주장하는 대규모의 선전활동에 나섰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서재필과 이승만은 한인자유대회를 개최했다.
 
 한인자유대회에는 약 150명의 재미한인이 참가했다. 당시 북미 한인의 숫자가 약 1,500명에 불과했음을 감안할 때 상당수의 사람이 참석한 것으로, 그들 중 많은 수가 미국 중·동부 지역의 유학생들이었다. 또한 미국의 상업·교육·언론·종교계 유력인사들이 초청되었다.
 
 3일 동안 미국사회 유력 인사들의 강연, 주제별로 각 위원회가 준비한 한국 독립에 관한 결의문과 호소문 발표, 토의 등이 진행되었다. 16일 마지막 회의를 마친 후 오후 4시 정각에 참석자들은 태극기와 미국국기를 양손에 들고 독립기념관을 향해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필라델피아시에서 제공한 1개 예비군 소대와 악대가 선두에서 행렬을 이끌었다. 독립기념관에 도착한 일행은 미국의 대통령 워싱턴이 독립선언을 선언하고 헌법을 선포한 방으로 들어가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어 함께 만세삼창을 한 후 독립기념관 앞에서의 기념 촬영을 함으로써 1919년 4월 16일 오후 5시 한인자유대회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이 모든 내용이 기록된 회의록은 홍보를 위해 1,000부를 인쇄했고 그 중 500부는 무상으로 한인과 미국의 각 기관과 단체에 보내졌고, 나머지는 교민들에게는 1달러씩 받고 배부되었다.
 
 한인자유대회는 필라델피아시 당국의 협조와 함께 신문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여론을 일으켜 주었다. 16일자 『필라델피아 레코드』지에서는 「한국의 독립」이란 제목으로 “한국은 독립을 얻을 자격이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독립을 얻기를 바란다.”는 사설을 실었고, 17일자에는 대회 마지막 날 시가행진과 함께 독립선언 행사를 상세히 보도했다.

#제1차한인회의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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