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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

『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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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교과서Text Book

  • 중학교 역사2(미래앤)
  • 고등학교 한국사(금성)
  • 고등학교 한국사(비상교육)

전시물설명Explanation

 일제강점기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에서 발행한 잡지로 1929년 5월 10일에 발행된 창간호가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편집 및 발행인은 정칠성, 인쇄인은 정경덕, 인쇄소는 창문사, 발행소는 근우회본부였으며, A5판형에 120여 면으로 정가 30전에 판매되었다. 『근우』는 현재 창간호만 남아있으며, 2호부터의 발간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근우회는 『근우』 창간호에 근우회 강령근우회 선언문을 싣고, 여성이 처한 사회적 문제를 한국의 전통적 가부장제와 식민체제에서 오는 여성의 성적, 계급적 모순이라 보고 여성의 단결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여성의 의식개혁과 계몽을 목표로 논설, 평론, 각종 상식, 소설 등의 문학작품, 회원들의 투고, 광고 등을 실었다. 그 중 박호진의 「여직공방문기」에서는 “경성에는 여직공이 있는 공장이 500여 처이고, 여직공이 3,870여 명이나 된다.”고 하면서 기자가 서울 네 군데 공장을 방문하여 본 여성 근로자의 실태를 소개하고 있다.
 
 『근우』를 발간한 근우회는 1927년 5월 27일에 창립된 민족주의 여성운동 계열과 사회주의 여성운동 계열의 협동체로서 같은 해 조직된 신간회의 자매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근우회의 창립이념과 활동의 기본 방향은 강령에 제시된 것과 같이 “여성의 단결과 지위향상”이었으며, 활동 목표는 봉건적 굴레와 일본 침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를 위해 부인강좌와 순회강연, 각 지회에서의 야학운동, 『근우』 발간 등의 활동을 전개했으며 여성들의 문맹을 퇴치하고 봉건적 인습 타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각종 항일학생운동 지도와 지원에도 참여했다.
 
 해마다 지회가 늘어나서 1930년까지 국내외에 약 60여 개 처가 조직되기도 했으나, 점차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해져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탈퇴하고 일본의 탄압이 가중되면서 1931년에 해산되었다.

#근우회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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